
이 영화는 글러먹은 인생을 살고 있는 32살 이치코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오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지금 전역하고 한 달 정도가 지났는데, 앞으로의 인생에 있어 생각할 거리를 준 영화가 아닌가... 생각한다.
한 달간 헬스와 게임만을 반복하며 자기 계발은 뒷전으로, 헬스는 하고 있다는 자위 (건강은 유지하고 있다, 적어도 하루에 한 번씩은 집 밖에 나가니까.. 같은 생각)와 게임을 통한 도파민과 쾌락만을 즐기고 있던 도중, 유튜브에서 이 영화를 발견했다.
이 영화는 도입부부터 강렬했다. 어질러져 있는 책상,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담배, 그리고 만화책들.
물론 내 방은 이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정신 상태는 아마 그녀와 지금의 나는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도입부를 유튜브에서 보자마자, 이 영화를 끝까지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기억나는 줄거리
잉여 인간이었던 이치코가 여러 일을 겪고 복싱을 배우면서 조금이나마 자신감을 얻게 되는 이야기.
이치코는 말 그대로 밥버러지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다.
특정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간 쌓여왔던 감정이 폭발하며, 이치코와 그녀의 여동생은 크게 다투게 되고, 이치코는 독립해서 살겠다는 결정을 하게 된다.
물론 계획 따위는 없었다. 동생과의 다툼에 크게 화가 나서, 충동적으로 선택하지 않았을까?
자취를 시작한 이치코. 자취를 하려면 역시나 돈이 필요하기에, 근처의 백 엔 샵에서 알바를 하기로 한다.
알바에서 만난 사람은 말이 너무 많은 띠동갑 아저씨 노마, 그리고 친절한 점원.
살면서 알바는커녕 제대로 된 일을 해보지 않았기에, 이치코의 사람을 대하는 방법은 매우 서투르다. 물론 일 또한 서투르다.
우연히 집에 가는 길에, 복싱 짐을 보게 된다. 늦은 밤이었지만, 한 사람이 남아 복싱 연습을 하고 있다.
그의 이름은 카노 유지. 아마추어 복싱 선수였다.
백 엔 샵에서 알바를 하며, 카노 유지가 이 가게의 유명한 손님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가게에 다니며, 유지는 이치코에게 경기를 보러 오라고 경기 티켓을 준다.
이치코의 몸을 노리고 계속 치근덕대던 노마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가족 외의 사람들과의 교류가 적어 다른 사람의 요구를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이치코에게 유지의 복싱 경기를 보러 같이 가자고 한다.
복싱 경기를 보며, 이치코는 무엇인지 모를 재미를 느낀다. 후에 이야기하기를, "정말 싫어해서 때리는 것이 아닌 경기로서 최선을 다해 싸우고, 경기가 끝나면 서로 등을 두드려 주는 모습이 멋있어서"라고.
경기를 본 후, 유지, 이치코, 노마는 술자리를 가진다. 물론 노마는 이치코의 몸을 노리고 계속해서 붙어 다니는 상태이다.
이치코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노마는 이치코의 흉을 보고, 유지는 그런 노마에게 주먹을 날린 후 가게를 나간다.
이 장면을 통해, 유지의 백 엔 샵에서의 이상한 행동들이 이치코의 관심, 그리고 호감을 끌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유지는 떠났고, 노마와 이치코는 단둘이 가게를 나선다.
처음부터 이치코의 몸을 노리고 접근했던 노마는, 이치코를 폭행하고 강간한다.
다음날 일어난 이치코는 담담하게 경찰에 자신이 강간당했다고 신고하고, 극중 나오지는 않지만 노마는 경찰에 잡혀가게 된다.
이치코는 그 후로도 평소와 다름없는 생활을 계속한다. 백 엔 샵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생활비를 벌고, 새벽마다 찾아오는 할머니에게 남은 야키소바를 주고, 간간이 오는 손님들을 받는 생활.
(원래 점장이 가게를 떠나고, 새로 부임한 점장은 야키소바 할머니에게 남은 야키소바를 절대로 주지 말라고 한다. 그것이 규정이기 때문이라고.)
이 이후였는지 이전인지는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사실 복싱 체육관에 등록하는 시점이 언제인지는 별로 중요한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치코는 복싱 체육관에 등록을 하고, 복싱을 배우기 시작한다.
평소와 다름없던 하루. 야간 편의점 근무 시간에 유지가 편의점에 찾아와 토를 하고 정신을 못 차리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치코를 제외한 두 점원이 그를 밖으로 끌어내, 길바닥에 던져 놓는다.
퇴근하던 이치코는 집으로 가는 길에 그를 발견하고는, 집으로 데려와 쉬게 해 준다.
유지의 감기가 다 낫자, 이치코에게 감기가 옮게 되는데, 이제는 유지가 이치코의 집에서 그녀를 돌본다.
마치 부부처럼 한 집에서 살며 이치코와 유지는 생활한다. 애초에 이치코가 복싱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유지였기에, 이치코는 복싱 연습 또한 게을리하지 않고, 매일 아침 러닝을 나간다.
그 모습을 집에서 유지가 보고 있다.
하지만 이 생활도 그리 오래 가지는 못한다. 어느 날 유지는 일자리를 알아보던 도중, 두부를 파는 여자와 눈이 맞아 갑작스럽게 이치코를 떠난다.
복싱에 대한 열정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을까. 실연을 당한 이치코는 유지에 대한 분노를 연료삼아 복싱 연습에 열을 올린다. 매일매일 러닝 연습에 열을 올리고, 밤늦게까지 복싱 체육관에 남아 복싱을 연습한다.
야키소바 할머니에게 몰래 남은 음식을 주는 것이 계속 들키자, 점장은 이치코에게 먹다 남은 것 같은(폐기 예정인) 음식들을 야키소바 할머니에게 주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한다. 이치코는 그대로 점장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버린다.
"넌 해고야"
당연한 수순이었다. 가게를 나서는 이치코는, 가게 정문에서 야키소바 할머니와 만난다. 할머니는 그동안 고마웠다고 하고, 칼을 들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 돈을 훔치고.. 그 이후에 점장이 소리를 지른다.
이치코의 아버지가 이치코를 찾아온다. 이제 자취를 그만두고 집에서 다시 일해보는 것이 어떻겠니? 제안을 하러 온 것이다. 이치코는 흔쾌히 제안을 수락한다. 집을 나갈 때와는 어딘가 많이 바뀐 이치코를 보는 아버지의 얼굴에는 흐뭇함이 가득하다.
이치코는 자취를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의 가게를 동생과 함께 돕는다. 동생도 언니가 복싱에 열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언니의 바뀐 태도를 보며 놀란다.
일을 하던 어느 날, 이치코는 가게로 찾아온(이치코를 보러 온 것이 아닌, 그저 도시락을 사러 온) 유지와 만난다. 유지는 이치코를 보자마자 도망가고, 이치코는 그를 끝까지 따라가 지금까지 뭘 했냐고 묻는다. 유지는 행색으로 보아 두부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은 듯했으며, 두부 여자와도 결별했다고 한다. 그런 유지에게 이치코는 자신의 경기에 와 달라고 한다. 유지의 반응은 '어째서?' 였다.
열심히 연습한 이치코, 첫 복싱 경기에 나가게 된다. 입장곡은 백 엔 샵에서 매일같이 나오던 그 노래. 그리고 이치코는 어째서 이 노래를 골랐는지에 대해 묻는 코치에게 자신은 백 엔짜리 여자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경기가 시작되고, 열심히 연습한 것이 무색하게 이치코는 상대 선수에게 무참히 얻어맞는다. 계속해서 다운, 다운. 그 광경을 보던 이치코의 동생은 제발 뭐라도 좀 해보라고 한다. 경기를 보러 온 유지 또한 일어나! 라고 외친다.
마지막 라운드. 역시나 무참히 얻어맞았던 이치코지만, 단 한번의 레프트 훅을 상대 선수에게 적중시킨다. 그리고 다운된다.
경기가 끝나고 나오는 이치코는 유지와 대면한다. 누구보다 이치코의 마음을 잘 알아서일까. 유지는 같이 밥을 먹으러 가자고 제안하고 영화는 끝난다.
기억이 잘 안 나서 대강대강 적었다. ㅋㅋ
내 생각
장면 장면에 대한 느낌.
사실 영화의 큰 주제는 포스터에서도 볼 수 있듯이 개과천선이 맞다. 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본다.
어쨌든 이치코는 버러지 같은 생활에서 벗어나 어머니의 가게 일을 돕게 된다.
이치코가 강간을 당한 후의 행동은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여성과는 매우 다른 행동을 보여준다.
담담하게 경찰에게 전화를 걸어, "강간당했습니다"라고 말한다. 또한, 호텔을 나오며 그다지 엄청난 일이 아닌 듯이 "아프다, 씨발"이라고 하며 집으로 평범하게 돌아온다.
물론, 겉으로 보이지 않을 뿐, 이치코 또한 남성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을지 모른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구성되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강간을 당했기 때문일까.
야키소바 할머니에 대해 엇갈리는 시선이 있을 수도 있겠다. 점장은 그저 규칙을 지키려고 했을 뿐이다. 가게 영업에 있어, 노숙자들에게 남은 음식을 주는 것은 가게가 손해를 볼 수 있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정확한 규정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규정이 회사 차원에서 내려온 지령인지, 점장 스스로가 가게 경영에 있어 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만든 규정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결국, 규칙을 지키던 점장은 야키소바 할머니에게 칼로 위협당하는 지경에 이른다. 물론 사람 대 사람으로 생각했을 때, 남는 음식(말 그대로 유통기한이 지나 판매를 할 수 없는 제품)을 노숙자에게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은, 인류애적으로는 맞는 판단이다. 이치코는 자신이 살아왔던 삶이 노숙자와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경제적인 부분이 아니라 의지할 구석이 없다는 점) 동병상련을 느끼고 노숙자에게 음식을 제공했을 것이다.
하지만 칼을 들고 점장을 협박할 것 까지 있었나 싶긴 하다. 물론 그러지 않았다면 이치코가 해고당한 시점에서 점장은 음식을 주지 않았겠지만..
연출 중 마음에 든 부분은 정말 많다. 유지가 이치코의 집에서 나간 이후, 이치코가 복싱 체육관에서 밤 늦게까지 연습에 열을 올리던 모습. 이 모습은 영화 초반부에 이치코가 밤늦게까지 연습하고 있는 유지를 본 부분과 대응한다. 이치코도 한때 복싱에 열정이 있었던 유지처럼 열정을 가지게 된 것을 표현한 것이다.
이치코가 복싱을 배우기 시작하고, 아버지와 둘이 식사하는 장면도 좋았다. 작중 내내 볼 수 없었던 미소를 처음 보여주었던 장면이다. 마치 내가 인정받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 박혀만 있었던 딸이, 무엇인가에 열중하며 즐거움을 느낀다는 사실을 보았을 때 느끼는 감정은 어떤 것일까. 지금 내 인생은 아버지보다 이치코에 가깝기 때문에, 더 몰입해서 보게 된 장면이다.
이치코가 복싱을 시작하고 나서 마인드셋이 바뀌게 된 과정은, 단연 복싱뿐만이 아니었다. 스포츠를 통해 얻은 자신감도 물론 있겠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믿었던 남자에게 버림받은 것이 아마 큰 계기가 되지 않았으려나 싶다. 이치코는 유지 때문에 복싱을 시작했고, 유지를 롤모델로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유지가 밤늦게까지 남아 복싱을 연습하는 끈기에 끌렸고, 경기 후 비록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승부가 난 후 상대 선수와의 스포츠맨십에 끌렸을 것이다. 하지만 유지는 이치코의 롤모델로서의 자격이 충분하지 않았다. 복싱 경기가 끝난 후 바로 복싱을 그만둘 정도로 포기가 빨랐으며, "진짜 싫어하지 않으면 때릴 수 없거든" 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완벽한 스포츠맨십을 추구하는 사람 또한 아니였다. 하지만, 이치코와 헤어진 후 재회할 때 이치코의 얼굴을 보고 바로 도망친 부분에서, 유지의 반성 또한 알 수 있었다. 이치코는 유지 자신보다 더 뛰어난 끈기를 가지고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 스스로가 그것을 자각하지는 못했겠지만, 이것은 유지가 이치코를 보고 인생을 배우겠다고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
이치코의 '백 엔짜리 여자'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이치코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 대한 자조적 표현이 제일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삶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노래인 것이다. 백 엔, 매우 적은 돈처럼 지금껏 살아오면서 이룬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자조적인 표현일 것이다. 집에서도 일조차 돕지 않고 밥만 축내고, 자취를 시작해서도 번듯한 직장이 아닌 백 엔 샵에서 알바하는 것으로 겨우겨우 연명하는.
마지막 경기 장면도 일품이었다. 경기 장면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관객들, 특히 유지와 이치코의 동생의 감정선이 대단했다. 유지가 경기를 보러 왔다는 것은, 마지 예전에 이치코가 그랬듯이, 이치코의 복싱에 대한 동경이 유지에게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못 이룬 승리라는 꿈을 혹시 이치코가 이룰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와, 자신이 가지지 못했던 끝까지 노력하는 끈기를 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치코의 동생도 마찬가지다. 글러먹은 삶만 살 줄 알았던 언니가, 무엇인가에 열중하고 결과를 얻어내려 하는, 하지만 한계에 부딪혀 좌절하려 하는 것을 보고 여러 감정이 교차했을 것이다. 언니가 노력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스포츠는 냉정하기에 노력을 알아주지 않는다. 그래서 거의 울듯이 "뭐라도 해봐 패배자야" 라고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정말로 언니를 패배자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 승리자라고 생각하는 것이겠지.
마지막 복싱 경기에서 이치코가 이기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여타 다른 스포츠 만화나 애니메이션은 항상, 주인공이 기적을 일으키며 멋진 승리를 따낸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달랐다.
32살, 선수로 등록할 수 있는 마지노선에 복싱을 시작한 사람은, 특출난 재능이 없는 이상 지금까지 노력해 온 복싱 선수를 이기지 못한다. 결국 이치코도 범재였던 것이겠지.
그렇다고 해서,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며 시작조차 하지 않을 이유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치코도 마지막 라운드, 회심의 레프트 훅을 한 번 적중시킨다. 이것이 이치코의 남은 인생에 있어 어떻게 작용할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가 시청자에게 주고 싶은 메세지는 "포기하지 마라" 가 아니었을까.
복싱을 통해 한 여자와 남자가 서로를 롤모델로 삼아 더 나은 인생을 살게 되는 이야기였다.
처음 쓰는 글이라 매우 두서가 없었다. 다음 글은 생각을 더 정리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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